지난 추석 고향집으로 향하며 이번엔 좀 사근사근하게 딸 노릇을 해야지 마음먹었건만 웬걸, 무시로 퉁명스러움이 튀어나왔다. 근래 스스로를 ‘가녀장’이라 칭하는 최윤선의 <내 가게에 부모님을 고용했습니다>를 읽고, 이제 보호자의 자리가 뒤바뀌어가는 엄마와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할지 한참 생각해 놓고도 그랬다.
가녀장은 아직 사전에 없는 말이다. 이슬아의 소설 <가녀장의 시대>를 통해 알려졌다. 전통적으로 가족의 생계와 의사결정을 책임져온 ‘가장’의 자리에 딸이 들어선다. ‘K장녀’와 닮았지만 책임감을 숙명처럼 떠안기보다 자기 방식으로 관계의 판을 다시 짠다는 。에서 다르다.
최윤선은 소설이 아닌 현실 세계의 가녀장이다. 패션 디자이너로 일하던 그는 성실히 일해도 좀처럼 형편이 나아지지 않던 부모를 서울 연희동 전셋집으로 모셔와 작은 선술집 ‘또또’를 차렸다. 오랫동안 요식업을 해온 어머니는 조리 실장, 일흔이 넘은 아버지는 인턴이 돼 스투시 모자를 눌러쓰고 재료 사입과 홀을 맡았다.
가족이라고 저절로 좋은 동료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사장님’이 된 딸은 ‘경력직’ 부모에게 꽤 깐깐했다. 자칫 젊은 세대 손님과 불필요한 오해가 생길까 ‘손님에게 먼저 말 걸지 않기’와 같은 규칙도 세웠다.
이 책에서 좋았던 건 부모를 ‘구해낸’ 딸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이다. 오래된 부모의 이력을 낡은 것으로 치부하지 않고, 여전히 세상과 연결될 수 있는 능력으로 읽어낸 시선이 있었다. 선술집 또또는 그리하여 효도의 결과물이 아니라, 동네 사랑방을 닮은 새로운 가족 브랜드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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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내내 엄마 생각이 났다. 몇해 전 엄마가 “너 결혼 안 하고 계속 혼자 지낼 거면 집으로 안 내려올래? 엄마랑 같이 카페 하면 안 재밌겠나?” 하고 슬쩍 물어왔다. 진심으로 카페를 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라 결혼 생각이 없는지 떠보는 말이었단 걸 알면서도 나는 “절대 그럴 일은 없어” 하고 조금의 여지도 남기지 않았다. 최근에는 서울에서 강릉으로 이주하며 경상도에 있는 가족들과 좀 더 멀어지는 쪽을 택했다. 이런 불효녀가 또 없다.
대학 때부터 줄곧 가족과 떨어져 살았지만, 나는 지금껏 K장녀의 역할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했다. 내가 경계하는 건 서로를 지나치게 챙기다 각자의 삶까지 흐려지는 일이다. 넉넉하지 않은 형편 속에서 살아온 우리 가족에게는 서로를 딱하게 여기고 챙기는 마음이 짙게 배어 있다. 언젠가 동생이 “우리 집은 서로 위하다가 음식이 썩어나간다”고 한 적이 있다. 어쩌다 맛있는 게 생겨도 서로 먹으라고 미루다가 결국 상해서 아무도 못 먹게 되는 일이 왕왕 있었다. 서로 아끼는 마음과 서로를 지치게 하는 일은 때때로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또또의 세 사람을 보고 있자니 다른 질문이 생겼다. 최윤선은 나이 든 부모를 부양의 대상으로 보기 전에, 그들이 삶에서 쌓아온 기량을 보았다. 나는 그간 엄마에게서 무엇을 보고 있었을까.
3년 전 엄마의 칠순을 맞아 여행을 다녀왔다. 오랜 시간 가장으로 살아온 엄마에게는 첫 유럽행이었다. 엄마는 새로운 풍경을 볼 때마다 혼잣말처럼 “이야, 세상이 이렇게나 넓구나” 하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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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탄과 한탄 사이의 말이었다. 엄마의 시선은 이내 주변의 유학생들로 옮겨갔다. “저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이런 세상을 다 경험하고. 앞으로 얼마나 더 큰 사람으로 살아가겠노.” 그리고 몇번이고 뒷바라지를 못해줘 미안하다고 덧붙였다. 그땐 그 말을 부모로서의 회한으로만 받아들였는데, 뒤늦게 그 메아리에 깃든 목소리를 가늠한다. 그건 자식을 향한 미안함이기 이전에, 엄마 자신이 살아보지 못한 삶에 대한 아쉬움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나는 엄마와 같이 살거나 함께 카페를 할 생각은 없다. 내가 택한 건 거리 두기다. 가족에게서 빠져나오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건강하게 관계를 지키기 위해서다. 다만 멀리서도 관계를 이어갈 일은 찾아보려 한다. 요즘 향교에서 지공예를 배운다는 엄마에게 조만간 작품 하나를 의뢰해볼 참이다. 떨어져 살아도 서로의 일상을 놓지 않는 한, 멀어질 결심이 책임질 결심의 반대말만은 아닐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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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영 <로컬 씨, 어디에 사세요?> 저자
서진영 <로컬 씨, 어디에 사세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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