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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오전 카키색 죄수복을 입은 백아무개(61)씨는 휠체어에 앉은 채 대구지방법원 11호 법정으로 들어섰다. 왜소한 체격의 그는 이따금씩 왼쪽 다리가 불편한 듯 두손으로 받쳐 들어 자세를 고쳤다.
백씨는 지난 3월22일 경북 경주 앞바다에서 외조카(당시 32)를 죽음에 이르게 하고, 노모(87)도 바다에 빠뜨리려 한 혐의(존속살인미수·살인)로 구속 기소됐다. 그는 검사가 공소사실을 설명하는 내내 덤덤한 표정을 지었다.
53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어머니는 2남1녀 삼남매를 홀로 길러냈다. 백씨와 남동생은 어머니를 ‘강한 여성’으로 기억한다. 지적장애가 있는 막내 여동생에게 신랑감을 짝지어 준 것도, 임신 중 가정폭력을 알아채고 곧바로 이혼시킨 것도 어머니였다. 그렇게 태어난 외조카는 어릴 적 지적장애 2급 판정을 받아 시설에 맡겨졌다.
2016년 성인이 된 외조카가 시설을 나오면서 어머니는 전북 전주의 한 아파트에서 여동생과 외조카를 부양하기 시작했다. 2년 뒤인 2018년 홀로 살던 백씨가 그 집으로 들어갔다. 2014년 건설현장에서 허리를 크게 다쳐 경제활동을 거의 하지 못하던 백씨가 눈길에 넘어져 고관절·허벅지뼈 골절 수술을 받은 때다.
네 사람의 동거는 아슬아슬하게 이어졌다. 여동생과 외조카는 한번씩 돌발행동을 보였지만 그나마 정정한 어머니 덕분에 견뎠다. 2022년 여동생이 세상을 떠나면서 상황은 악화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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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머니의 치매 증상은 나날이 심해졌다. 식사를 기억하지 못해 하루 여섯끼씩 챙기는 날도 있었다. 백씨는 “엄마가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것 같아 서운했다”고 했다.
몸이 불편한 백씨는 혈기왕성한 외조카를 버텨내지 못했다. 그는 “외조카가 툭 건드려 넘어지면 스스로 일어나지 못하고 화장실까지 기어가 변기를 붙잡고 겨우 일어났다”고 주장했다. 어머니는 외조카를 보낼 시설을 알아봐 달라고 하다가도 정작 떠나보내지 못했다. 백씨와 남동생은 그런 어머니의 뜻을 꺾을 수 없었단다. 백씨 형제는 “외조카를 시설로 보내면 어머니의 치매 증상이 더 심해질까 봐 두렵기도 했다”고 말했다.
어머니와 외조카를 돌보면서 “자부심을 느낀 적도 있다”던 백씨는 .. 피폐해졌다. 지난해 2월에는 우울증 진단까지 받았다. 노인연금과 장애인연금으로 다달이 받는 80여만원으로는 빠듯했다. 백씨와 어머니가 모아둔 돈도 거의 바닥난 지경이었다. 남동생한테 하소연을 해도 돌아오는 건 공허한 위로뿐이었다. 남동생은 “처자식을 돌보느라 어머니를 모시거나 조카를 보살필 형편이 되지 않았다”며 “어머니가 모아둔 돈도 있어서 형이 경제적으로 어렵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고 했다.
범행 한달여 전인 지난 2월3일 백씨는 ‘한계. 너무 힘들다’는 문자메시지를 남동생에게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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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면서도 “남동생이 이혼당할까 봐 적극적으로 도움을 요청하지 못했다”고 했다.
지난 3월22일 아침 8시 백씨는 자신의 승용차에 외조카와 어머니를 태웠다. 미리 봐둔 경주의 한적한 바닷가를 목적지로 정했다. 집에 보관하던 수면제와 오래전 맞춰둔 어머니의 수의도 챙겼다. 그는 “내가 죽으면 돌봐줄 사람이 없는데, 그냥 두고 갈 수 없었다”며 “처음에는 다같이 수면제를 먹고 차를 몰아 바다에 빠질 생각이었다. 수의는 어머니가 잠들면 입혀드리려 했다”고 말했다.
경주로 향하던 길에 교통사고가 났는데도, 백씨는 계획을 이어갔다. ‘수리비가 350만원이 든다’는 정비소 직원에게 폐차를 요청한 뒤 택시를 불러 끝내 경주에 도착했다. 숙박시설에 짐을 푼 백씨는 수면제 일부를 먹고, 나머지는 둘에게 나눠 먹였다. 저녁 6시20분께 부둣가 바닥에 걸터앉은 세 사람의 모습은 폐회로텔레비전에 고스란히 담겼다. 외조카를 시켜 어머니를 바다 쪽으로 빠뜨리려다 실패한 백씨는 마음을 바꿔 바다로 뛰어들었다. 이내 바다로 뒤따라 들어간 외조카는 백씨를 향해 헤엄을 쳤지만, 뭍으로 돌아온 것은 백씨 혼자였다. 다시 어머니의 허리춤을 잡아 바다 쪽으로 끌어당기던 백씨의 손은 다른 숙박객들이 달려와 말릴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
법정에서 이런 영상이 재생되자, 백씨는 고개를 떨구고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눈가를 훔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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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당시 어머니가 “하늘나라에 안 간다”는 짧은 말만 수차례 반복했다고 전했다. 다만 스스로 바다에 들어간 이유와 뒤따라온 외조카를 홀로 두고 온 이유 등에 대해서는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건강을 회복한 어머니는 현재 요양원에서 지내고 있다. 남동생은 “외조카가 사망했다고 알려줬지만 기억하지 못하고, 계속 외조카를 찾고 있다”고 했다. 사건 당일에 대해서는 말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검사는 “피고인은 범행에 취약한 장애인과 노인을 상대로 계획적인 범행을 저질렀고, 교통사고 등 범행을 중단할 계기가 있었는데도 강행했다. 어머니가 싫다고 해서 조카를 시설에 맡길 수 없다더니, ‘하늘나라에 가기 싫다’는 어머니에게 계속 범행을 시도했다”며 징역 12년을 선고해달라고 재판부와 배심원에 요청했다.
국선변호인은 “피고인은 극심한 스트레스로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깊이 반성하고 있다”며 선처를 호소했다.
수사기관에서는 재범 의지를 굽히지 않았던 백씨는 법정에서 “풀려난다면 어머니를 모시고 산에 들어가 살겠다”고 말해, 배심원들이 고개를 갸웃거리기도 했다.
1시간30여분 만에 평의·평결을 끝낸 배심원 7명은 만장일치로 백씨의 유죄를, 양형에 대해서는 4명이 징역 7년, 3명이 징역 8년을 선고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재판부는 이를 종합해 징역 7년을 선고하며 “자신의 처지를 비관해 계획적으로 범행을 저지르고, 살고 싶다는 어머니한테 범행을 계속했다. 피고인의 자살가능성과 재범위험성 등이 가볍지 않아 엄히 처벌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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