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오폴트 폰 칼크로이트 <인생의 세 시기-노년> 1898년
ⓒ 퍼블릭 도메인
서양 회화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인생의 세 시기'라는 제목의 그림이 꽤 많다는 。을 안다. 보통은 유년기, 청장년기, 노년기로 나누어 인간의 성장과 활동, 늙음과 죽음을 묘사한다. 르네상스에서 근대에 이르기까지 주요 화가들의 단골 주제였다. 흔히 노인은 주름이 가득하고 허리가 굽은 모습이고, 죽음을 상징하는 해골을 만지작거리며 인생의 무상함을 전한다.
하루의 의미가 사라져버린 노년
독일 인상주의 화가 레오폴트 폰 칼크로이트(1855~1928)의 <인생의 세 시기-노년>도 인간의 생로병사라는 전통적인 주제를 담았다. 다른 화가들이 하나의 화폭 안에 유년·청년·노년을 다양한 배치로 그렸다면, 그는 연작 형식으로 각기 다른 작품에 담았다. 위 그림은 인생의 세 단계 가운데 노년에 해당한다. 인상주의 경향을 본격적으로 받아들이기 전, 사실주의에 충실한 표현으로 노인 모습을 그렸다.
기존에는 크게 두 가지 메시지를 담는 경향이 있었다. 하나는 죽음을 기억하라는 의미를 지닌, '메멘토 모리'다. 이 경우에는 노인을 큰 비중으로 다룬다. 언제든 죽음이 찾아온다는 의미에서 해골과 모래시계를 배치하곤 한다. 16세기에 네덜란드에서 시작해 유럽으로 퍼진 '바니타스' 회화가 대표적이다. 헛됨·공허를 의미하는 라틴어 성경 구절에서 유래한다. 이승에서의 인생은 헛되니 집착에서 벗어나라는 교훈을 전한다.
다른 하나는 젊음의 예찬에 초.을 맞춘다. 전성기 르네상스 회화의 거장 티치아노의 같은 주제 그림이 대표적이다. 대개는 청년기가 그림의 중심을 차지하고 노인은 뒤편에 거의 의미 없는 존재처럼 묘사된다. 인생의 황금기를 만끽하는 청년 시절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노인은 가장 반대편 상태에 있는 비교 수단 정도로 다루어진다. 청년은 남자든 여자든 건강한 신체와 아름다운 모습을 통해 인생의 절정에 있음을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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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칼크로이트의 그림을 분류하자면 전자에 가깝다. 대신 죽음을 기억하라는 비유는 없다. 그런 。에서 전형적인 바니타스 회화와는 다소 결이 다르다. 70~80세로 보이는 노인이 의자에 걸터앉아 물끄러미 땅을 바라보는 중이다. 화가가 이 작품을 통해 임박한 마지막 순간으로서의 죽음보다는, 그녀의 현재 삶과 일상에서 어떤 이야기를 찾아내길 원하는 듯하다.
그녀 뒤로 작은 창문이 있어서 집 뒤뜰로 보인다. 한 손으로 턱을 괴고 땅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다. 무언가 중요한 문제를 놓고 숙고하는 분위기는 아니다. 지팡이를 잡고 땅을 긁적거리는 것으로 봐서 무료한 기분으로 시간을 죽이는 게 아닐까 싶다. 시간이 멈춘 것처럼 이미 상당한 시간을 이 자세로 멍하니 땅을 응시하고 있었으리라.
농촌 마을이니 다른 사람들은 대부분 농사일하러 들에 나갔을 시간이다. 지팡이를 짚고 다닐 만큼 불편하고 노쇠한 몸이니 함께 땀 흘리며 일하기가 어려운 처지다. 그렇다고 달리 시간을 보낼 마땅한 소일거리도 없으니 볕이 드는 의자에 앉아 상념에 잠겨있겠지. 노인의 상념이 대체로 그러하듯이 과거의 기억으로 향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젊은 시절의 활기와 설레었던 기억을 떠올리며 오늘의 일상에 무력감을 떠올리기 십상이다.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의 대화편인 <국가> 도입부의 다음 내용은 대다수 노인이 겪는 상념의 현실을 잘 보여준다. 노년에 들어선 케팔로스라는 노인에게 소크라테스가 평소 궁금해하던 바를 묻는다. 인생에 있어서 노년이 어려운 고비인지 어떤지를 말해달라고 하자 다음의 대답이 이어진다.
"우리 중에서 대부분은, 모였다 하면 젊은 시절의 즐거움과 술잔치, 경축 행사, 성적 쾌락 등을 회상하며 한탄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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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마치 굉장한 무엇인가를 빼앗기기라도 한 듯이, 한때는 잘 살았으나 이제는 사는 것도 아닌 듯이 화를 내지요. 그런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노인에 대한 친척들의 불손한 태도에 대해서까지도 탄식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자신에게 닥친 온갖 불행의 탓이 노령이라며 나이 타령을 합니다."
젊음의 활기와 극적으로 비교되는 노년
▲ ?칼크로이트 <청소년> <청년> 189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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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의 회상은 주로 정력적으로 활동하던 청년기와 온갖 기대로 가득하던 청소년기로 향한다. 칼크로이트의 연작 가운데 <청소년>과 <청년>은 이 시기의 특징을 담고 있다. 먼저 청년기는 정신과 육체 모두에서 가장 왕성한 능력을 지니고 여러 성취를 이루어내던 때다.
그림에서는 바구니 가득 수확한 감자를 등에 지고 집으로 향한다. 이미 결혼하여 가정을 꾸렸고, 대여섯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아들이 엄마의 일을 돕고 있다. 뒤로 보이는 너른 밭과 묵직한 감자 바구니는 단지 식량을 넘어서 그녀가 이룬 성취를 의미한다. 팔뚝에 선명하게 잡힌 근육만큼이나 미래를 열어갈 자신감이 꿈틀거리는 시절이다.
노인들이 기억을 되돌려 상념에 잠길 때 가장 자주 떠오르는 시절이다. 신체와 정신이 정.에 도달해 있고 가장 활발하게 경제활동을 하는 시기이니 그만큼 이룬 바도 많다. 오랜 세월이 흘러도 자부심으로 남아 있다. 게다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하고, 아이가 태어나고 성장하는 신비로운 경험이 가득하다. 그러므로 전통사회든 현대사회든 청년기 삶은 지나간 젊음을 그리워하는 노인들에게 제일 자주 떠오르는 기억이기 마련이다.
<청소년>은 풋풋하던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10대 중반 정도의 앳된 소녀가 이삭을 줍다가 일을 멈추고 허리를 편 순간이다. 시선은 밀밭이 아닌 먼 곳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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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을 도와 밭에 나왔겠지만 매일 반복되는 농사일이 달가운 표정은 아니다. 입가에 살짝 미소를 머금은 듯하지만 확실하지는 않다. 뭔가 호기심이 어린 눈길이다. 매일 접하는 가족이나 농사와는 다른 일이 벌어지는 중이거나, 어쩌면 눈길을 끄는 소년이 지나가는 중일 수도 있다.
우리 스스로 청소년 시절의 경험을 떠올려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새롭게 맞닥뜨린 상황과 사람에 대한 궁금증과 기대가 가득하다. 미래도 흰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듯이 온갖 가능성이 열려 있다. 그래서 관심이 어느 하나로 고착되기보다는 다양한 방면으로 향한다. 특히 청소년은 이성을 향한 관심과 설렘이 솟아나는 때다. 가슴 떨리는 사랑을 열망한다. 플라톤의 또 다른 대화편 <향연>에 나오는 아가톤의 연설이 이를 잘 반영한다.
"에로스는 신들 가운데 가장 젊다네. 에로스 자신이 결정적 증거를 보여주지. 원래 늙음이란 우리 예상보다 훨씬 빨리 다가오는데 에로스는 쏜살같이 늙음을 피해 달아난다네. 본성상 늙음을 혐오하여 늙음과 거리를 유지한다네. 늘 젊은이들을 사귀고 그들과 하나가 되지. 비슷한 것은 비슷한 것과 항상 가까이 있으려 한다는 옛 속담이 딱 맞는다네."
그에 의하면 사랑과 젊음은 한 쌍으로 연결된다. 에로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사랑의 신이다. 로마 신화에서는 큐피드라 부른다. 그의 화살로 상대에게 반하고 사랑에 빠진다. 고대 그리스나 로마에서 신화를 묘사한 조각과 회화를 보면 에로스는 늘 젊은이로 등장한다.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솜털이 보일 듯한 앳된 모습이다. 아예 사랑은 늙음을 멀리하고 젊음과 하나가 되어 어울리는 게 본래의 특성이라고 한다.
사랑이 섬세한 감정인 이유도 젊음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에로스는 젊음과 어울리기에 언제나 물과 같이 유연하다. 나이가 들면 감정도 굳어져 경직된 상태에 빠진다. 그렇게 되면 "사람의 영혼을 온전히 감쌀 수도 없거니와 아무도 모르게 영혼 안을 들어갔다 나왔다 할 수도 없을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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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물며 이미 젊음이 사라진 노인이라면 말할 나위도 없다. 노인은 사랑과 반대편에 있는 존재가 되어버린다.
추한 존재로서의 노인?
▲ ?프란시스코 고야 <죽을 때까지> <왜 숨기는가!> 179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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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음과 젊음의 구별은 세월의 흐름에 따라 변해가는 노인 육체의 무력함을 강렬하게 대조하는 방식으로 나타난다. 더 큰 문제는 육체적·정신적 능력의 쇠퇴로 묘사하는 데에 머물지 않는 경우가 꽤 많다는 。이다. 젊을 때는 정당하다고 여겨지거나 나아가 칭찬을 받았을 행위조차 노인에게 적용되면 전혀 다른 반응이 나타난다.
스페인 화가 프란시스코 고야(1746~1828)의 <죽을 때까지>와 <왜 숨기는가!>는 이러한 경향을 잘 보여준다. 80여 。의 판화를 모아 출판한 <변덕>의 일부 작품이다. 귀족과 성직자를 비롯한 지배층의 무지·무능력·위선·부패, 종교적 광신주의와 종교 재판의 잔혹함 등을 풍자한다. 그런데 추악함을 상징하는 인물로 노인이 자주 등장한다.
<죽을 때까지>에서 한 노인이 거울을 보며 치장하느라고 정신이 없다. 탁자 위에 화장품이 여러 개 있어서 화장을 마친 듯하다. 지금은 머리에 쓸 장식을 고르는 중이다.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에 흡족한 표정이다. 곧이어 차려입을 옷도 꽤 화려할 게 당연해 보인다. 하녀는 웃음을 참느라 손으로 입을 가린다. 청년들은 더는 못 봐주겠다는 표정으로 비웃는다.
고야는 비슷한 장면을 유화로 다시 그렸을 정도로, 외모 치장에 열중하는 노인을 추한 모습의 전형으로 보았던 듯하다. 이 그림에서는 최신 유행 드레스를 입고, 보석이 박힌 반지·팔찌·귀걸이·머리핀이 번쩍인다. 뒤로는 시간을 의인화한 악마 형상이 바짝 다가와서 죽음이 임박해 있음을 알려준다. 제목도 '시간과 노인'임을 고려할 때 죽음이 가까이 있음에도 몸을 꾸미는 데 열중하는 여인을 이른바 '나잇값 못하는 노인네'의 허영이자 추태로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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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숨기는가!>는 재물욕에 눈이 어두운 노인을 다룬다.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말을 들어도 과장이 아닐 만큼, 얼굴에 깊게 패인 주름이 가득하다. 남이 볼세라 몸을 돌려 잔뜩 웅크리고 손에 돈 자루를 움켜쥐고 있다. 이미 넘칠 만큼 많은 돈임에도 부족할까 노심초사하며 더 축적하려 용쓰는 중이거나 혹은 남들이 자기 돈을 쓰자고 할까 걱정하는 중일 수도 있다. 어쨌든 노인이 돼서도 재물에 집착하는 모습을 극도로 추하게 묘사했다.
만약 청년이 자신을 아름답게 꾸미거나 열심히 재물을 모으면, 보통은 사회적으로 비난을 받지 않는다. 오히려 자기 관리를 잘한다거나 근검절약을 통한 부의 축적으로 칭찬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그러한 행위의 주체가 노인일 때 주위에서 손가락질을 받기 일쑤다. 고야만이 아니라 적지 않은 사람이 이를 끝없는 허영이나 욕심으로 생각하여 눈을 흘긴다.
청년을 인생의 황금기로 규정하고, 이와 반대로 노인을 쇠퇴나 오히려 부정적 특성이 증가하는 시기로 대비하는 사고방식은 고대부터 이어져 왔다. 젊음과 늙음을 우월과 열등으로 구분하는 생각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수사학>에서 제시한 내용이 큰 영향을 주었다.
그에 의하면 청년은 이익보다는 아름다움, 계산보다는 기개를 따른다. 어려운 사람들에 대해 동정심을 지니고, 친구와의 우정이나 연인을 향한 사랑에서도 순수하고 능동적이다. 하지만 노인은 대부분 청년기와 거의 반대되는 성격을 지니고 있다. "이미 인생의 쓴맛을 보았기 때문에 생각이 비루하다. 위대한 것이나 특별한 것을 욕망하지 않는다. 다만 삶에 필요한 것들만 욕망하고, 몹시 인색하다. (…) 아름다움이나 합리적인 것보다는 이익을 위해 산다."
노인은 오랜 세월을 살며 속거나 실수를 저지른 경험도 많기에 항상 상황이나 사람을 의심한다. 쉽게 두려워하고, 미리 걱정을 한다. 살면서 여러 차례 실패를 겪었기에 미래에 대한 희망도 거의 품지 않는다. 앞날을 향한 기대와 희망보다는 과거에 대한 추억에 얽매이는 경향이 강하다. 과거의 삶을 회상하는 데에 머문다는 것이다.
노인이 의자에 걸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