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일 소설집 ‘여여한 사람들’ 표지. /도서출판 득수 제공
삶을 뒤흔드는 재난과 위기 속에서도 인간은 다시 평온을 찾을 수 있을까.
지역의 삶과 인간 본연에 천착해온 소설가 김도일(52)이 두 번째 소설집 ‘여여한 사람들’(도서출판 득수)을 냈다. 2023년 첫 소설집 ‘어룡이 놀던 자리’ 이후 3년 만에 선보이는 이번 신간은 서로 다른 시공간에서 삶의 위기를 마주한 일곱 사람의 서사를 고스란히 담아냈다.
작가는 2017년 포항소재문학상 공모에서 대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이번 작품은 “인간과 세계의 위기는 어디에서 시작되는가”라는 근본적인 물음에서 출발한다.
사방사업이 한창이던 시절의 우스꽝스럽고도 슬픈 인간군상부터, 2022년 태풍 힌남노 당시 포항 아파트 지하주차장 침수 사고를 떠올리게 하는 재난, 가족 내부의 미세한 균열, 청년층을 절망으로 몰아넣은 전세 사기, 산업 현장의 파업과 환경 문제에 이르기까지 다채로운 현실적 비극이 묵직하게 펼쳐진다.
특히 수록작 ‘보현이’는 캄캄한 수마(水魔)에 갇힌 두 인물이 어둠 속에서 나누는 대화와 가족에 대한 기억, 두려움과 죄책감을 문학적 상상력으로 밀도 있게 조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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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제 사건을 단순 기록하는 데 그치지 않고, 뉴스 보도가 지난 뒤에도 당사자의 가슴속에 끝내 지워지지 않는 흔적과 마음의 풍경을 깊이 있게 담아냈다.
책 제목의 ‘여여(如如)하다’는 외부 상황에 흔들리지 않고 잔잔한 호수처럼 평온을 유지하는 불교적 상태를 뜻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소설 속 인물들은 저마다의 욕망과 상처, 타인의 무관심과 강고한 사회 구조의 벽 앞에서 대책 없이 흔들린다. 작가는 이들을 섣불리 심판하거나 단죄하는 판관의 시선을 거두고,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를 담담하고 위트 있는 시선으로 오래 바라본다.
표지의 핵심 모티프로 쓰인 바다의 ‘여(礖)’는 물속에 숨어 있어 눈에 보이지 않지만 물길을 바꾸고 파도를 만들어내는 암초를 의미한다. 삶의 표면에 드러난 재해 뒤에는 욕망과 상처, 침묵 같은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의 ‘여’가 존재하며, 그것이 결국 한 사람의 삶을 뒤흔드는 파도가 된다는 서사적 메시지를 전달한다.
작가는 감각적인 문장들로 재난과 상처를 통과하는 인물들의 내면을 독자가 함께 체감할 수 있도록 했다
오리지날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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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치고는 꽤 많은 양의 비가 며칠에 걸쳐 내렸다. 들에도 바다에도 사람들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갈매기들은 내리는 비에 아랑곳하지 않고 바다 위로 낮게 선을 그었다. 골목은 물길 패인 골을 따라 벌건 흙탕물이 내려갔다.” (소설 ‘해방둥이 김개동’ 에서)
“보름달이 뜨는 날이면 아침부터 죽은 이들을 위한 음복이 시작된다. 서편 하늘에 노을이 지기 시작할 때, 나는 물에 빠진 것처럼 숨쉬기가 힘들어진다. 그리고 냄새···. 비린 흙탕물과 물에 섞인 기름 냄새가 관자놀이 주위를 휘감아 조이고 조인다.” (‘보현이’ 에서)
소설가 김서령은 추천사에서 ?“완장 하나에 우쭐해지는 인물부터 사기로 무너진 신혼집을 견디는 부부까지, 읽다 보면 내가 아는 누군가와 겹쳐 보이는 순간이 온다”며 “작가가 인물들을 다그치지 않고 곁에서 오래 지켜본 사람처럼 담담하게 써 내려가 아프게 읽히다가도 끝내 위로가 된다”고 평했다.
김도일 작가. /도서출판 득수 제공
김도일 작가는 ‘작가의 말’을 통해 “슬퍼하고 기뻐하되 그 감정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 ‘여여한’ 것”이라며 “이야기 너머로 인물들을 좇아가다 보면 언젠가는 그들도 겪어낸 삶의 흔적에 대해 여여해지기를 바란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