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음악계의 구원자를 자처하는 지휘자 테오도르 쿠렌치스. 다음 달 처음으로 한국을 찾는다. 사진 롯데콘서트홀
“거대한 포탄.” “숨 막힐 듯한 속도.” 영국의 음반 평론지인 그라모폰이 지휘자 테오도르 쿠렌치스(54)의 음악을 평한 문구다. 쿠렌치스가 2020년 발매한 베토벤 교향곡 5번에 대한 묘사였다.
쿠렌치스는 클래식 음악계에 균열을 일으키며 등장했다. 대담하게 빠른 속도로 극적인 해석을 내놨고, 찬사와 혹평을 동시에 받았다. 딱 붙는 바지에 펑크족을 연상시키는 머리로 무대에 올라 오케스트라를 지휘했다. 청중은 그에게 ‘반항아’ 내지는 ‘무정부주의자’라는 별명을 붙였다.
쿠렌치스가 한국 첫 공연을 앞두고 있다. 그는 다음 달 17ㆍ18일 롯데콘서트홀에서 자신이 창단한 유토피아 오케스트라와 함께 내한 공연을 펼친다. 내한을 앞두고 한국 기자들과 서면 인터뷰에서 그는 “금세 유행이 지나갈 혁신은 거부한다. 절제되고 본질적인 탐구에 집중하면서 진정한 혁신을 꿈꾼다”라고 했다.
20여 년 전 그는 자신을 ‘클래식 음악의 구원자’로 소개했다. 2005년 영국 텔레그라프와 인터뷰에서 “내가 클래식 음악을 구원할 것이다. 5년이나 10년 만 기다려달라”고 했던 표현은 지금까지도 회자된다. 이번 인터뷰에서 쿠렌치스는 이에 대해 “우리가 아직 알지 못하는 어떤 것에 관심이 있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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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악과 공연은 하나의 의례이며 정신적 경험을 위한 특별한 행위이다. 영혼의 공간을 음악으로 만드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다”라는 답변도 덧붙였다.
당시 인터뷰에서 “음악이 식료품.의 상품이 돼버렸다”고 했던 입장은 여전했다. “클래식 음악을 절제되고 감정 없이 연주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보수적인 애호가들의 반발을 자주 경험하지만 사실이 아니다. 베토벤ㆍ베를리오즈ㆍ말러의 음악을 보라. 음악은 감정이 넘쳐 흐르는 화산과 같다. 연주자가 온 영혼과 감정을 담아 표현할 때 새로운 관객에게 다가갈 가능성이 생긴다.” 프랑스의 바로크 작곡가 장 필리프 라모의 작품을 녹음한 2014년 음반에 “이 음반을 들으며 혼자 울 수 있고 목청껏 소리 지를 수 있다”고 썼던 지휘자답게 그는 감정적인 해석을 중시한다.
때로는 거센 비판을 받는 자의성에 대해서도 변론했다. “지휘자의 직관은 반드시 필요하다. 지휘자의 미적 감각이 그 시대의 유행을 넘어설 수 있게 한다.” 그는 악보에 담긴 정보를 넘어서는 지휘자의 해석을 강조했고, 대중의 입맛에 맞춘 음악에 대해 비판했다. “그 시대 사람들의 취향에 맞춘 해석은 시간이 지나면 잊힌다. 직관과 미감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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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쿠렌치스는 자신의 해석이 유행과 상관없는 본질적인 혁신이라고 했다. “유행이 지나갈 혁신 대신 진정한 혁신을 꿈꾼다.”
쿠렌치스는 음악에 대한 급진적 해석과 함께 정치적인 이유에서도 현재 뜨거운 지휘자다. 그리스 아테네 태생인 그는 러시아에서 전설적 지휘 스승인 일리야 무신과 공부했고, 2004년 노보시비르스크 오페라의 음악감독으로 공식 활동을 시작했다. 2014년에는 푸틴 정부에게 러시아 시민권을 받았으며 역시 러시아에서 음악 단체인 ‘무지카에테르나(MusicAeterna)’를 설립했다. 이 단체는 러시아 국영 VTB 은행의 후원을 받고 있다.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쿠렌치스는 유럽의 일부 도시에서 공연 취소 통보를 받았다. 그가 전쟁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쿠렌치스는 2022년 10월 서유럽을 기반으로 연주자들을 모아 유토피아 오케스트라를 새롭게 만들었다. 30여개국100여명의 음악가가 모인 유토피아 오케스트라는 티켓 수익, 유럽 개인 후원자들의 지원으로 운영된다. 쿠렌치스와 유토피아 오케스트라는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등에서 공연을 이어가고 있다.
이번 인터뷰에서도 쿠렌치스는 확실한 입장을 밝히지 않는 원칙을 고수했다. “우리는 연설하고 구호를 외치는 정치인이나 공인이 아니다. 우리의 사명은 국경 없는 의사회와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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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은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며, 우리는 도움이 필요한 모든 이에게 다가갈 준비가 돼 있다.” 다만 전쟁 자체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입장을 보였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질문은) 한 가지 분쟁에 초。을 맞추고 있지만, 실제로 세계 곳곳에서는 많은 분쟁이 벌어지고 있다. 인류의 역사에서 분쟁은 한 번도 완전히 멈춘 적이 없다. 매우 끔찍한 일이다.”
최근 쿠렌치스는 펑크족 같은 외양 대신 비교적 。잖은 복장으로 무대에 오른다. 하지만 다양한 영역에서의 활동만큼은 여전히 대담하다. 지난달 베네치아 국제 영화제에서는 쿠렌치스가 주연한 영화 ‘다우(DAU)’가 은사자상(감독상)을 받았다. 쿠렌치스는 주인공인 러시아의 양자 물리학자 역할을 맡았다. “나는 지휘 외에도 향수를 만들고 시를 쓰며 작곡도 한다. 곧 새로운 시집이 출간된다. 또한 여러 형태의 정신적 수행에도 많은 시간을 보낸다.” 쿠렌치스는 이 모든 일이 한 목표를 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아름다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그것을 전할 자격이 있는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이다.”
쿠렌치스와 유토피아 오케스트라는 이틀간의 한국 공연에서 말러 교향곡 1번, 스트라빈스키 ‘봄의 제전’을 연주한다. 바이올리니스트 다니엘 로자코비치, 피아니스트 알렉산더 멜니코프와 함께 쇼스타코비치의 협주곡들도 선보일 예정이다. 2020년 ‘무지카에테르나’와 함께 예정했던 첫 내한이 코로나 팬데믹으로 무산된 이후 이번이 첫 내한이다.
김호정 음악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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