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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세대의 일원인 벨기에 아나키스트 노엘 고댕은 1960년대 말부터 학자와 정치인, 예술인 등 "잘난 체하는 자의식 과잉 바보들"에게 생크림 케이크를 집어던지는 자칭 '앙타르퇴르(케이크 던지는 사람)'로 악명(?)을 얻었다. 그의 상징적 테러는 여러 비판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화제와 함께 상당한 호응을 얻었고, 그를 돕거나 함께 활동한 동조자도 적지 않았다. AFP 연합뉴스
성당 수녀들의 치마를 들추고 낄낄대곤 하던 벨기에의 한 악동이 수염이 자랄 무렵부턴 신부들을 골려먹는 데 재미를 붙였다. 미사 중에 방귀 녹음 테이프를 트는가 하면 고해소에서 자신의 성경험을, 상상력까지 동원해 적나라하게 고백(?)해 신부들을 쩔쩔매게 하는 식의 장난. 그렇게 변호사 아버지와 독실한 가톨릭 신자 어머니의 속을 썩이던 아이는, 공부에는 재능이 있었던지 60년대 중반 벨기에 남부 발롱 지역 주요 국립대인 리에주(Liege)대 법학부에 진학, 타고난 반항심과 장난끼를 정당화할 명분을 얻는다. 전후 아방가르드 예술운동과 국제상황주의자 운동 등 훗날 68혁명의 주역이 되는 베이비 부머들의 반문화-탈권위 시대정신. 그는 장난이 눈덩이처럼 자라며 일종의 사회성을 획득해갔다. 포르투갈 독재자 안토니오 살라자르 정권에 부역하며 헌법 개정을 도운 한 교수의 거들먹거림이 눈꼴시다며 교수 머리에 접착제를 들이붓는 ‘테러’를 감행, 퇴학까지 당했다. "장난을 예술의 경지로 승화시킨 불어권 최고의 말썽꾼" 노엘 고댕(Noel Godin, 1945.9.13~2026.8.23)의 이야기다.
청소년 시절부터 찰리 채플린의 무성영화와 슬랩스틱 코미디 연기라면 환장을 했다는 그는 대학에서 쫓겨난 뒤 한 가톨릭 단체가 발행하던 무명 영화잡지사(Friends of Film)에 취업, 세상을 향한 본격적인 ‘장난’을 시작한다. 보지도 않은 영화를 비평하고, 있지도 않은 감독의 부조리한 일화를 ‘창작’하는 장난. “한때 식인종이었다가 재즈 뮤지션이 된” 루이 암스트롱이 ‘선의의 채소들(The Vegetables of Good Will)’이란 영화에 투자했는데, 당대 스타 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가 그 영화에서 거대한 상추로 분장해 열연을 펼쳤다는 식의, 허무맹랑한 ‘비평’들. 태국의 한 맹인 영화감독(Vivian Pei)이 만든 ‘연꽃은 당신의 섬에선 자라지 않을 것’이란 작품을 하도 그럴싸하게 묘사-비평해, 아시아의 한 영화 기자가 그 감독을 만나려고 태국까지 찾아간 일도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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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론 모두 그의 창작이었다.
예술-특히 미술 작품에서 허구를 사실처럼 꾸며 제시하는 기법을 21세기 미학은 ‘패러픽션(parafiction)’이라 한다. 현실과 허구, 진짜와 가짜의 경계를 모호하게 함으로써 대상을 풍자하고 더 나아가 감각과 인식을 의심-질문하게 하는 성찰적 미학 장치로 인정하는 것. 그 기법을 문학에선 ‘리터러리 혹스(literary hoax, 문학적 장난)’라고도 한다.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에 에라스무스 등 당대 인문학자들이 진지한 편지와 지도, 심지어 서문을 달아 논픽션인 양 동조-공모한 것도, ‘유토피아-어디에도 없는 곳’이라는 제목의 자백에도 불구하고, 광의의 패러픽션이라 할 수 있다. 반면에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가 허구의 백과사전과 거짓 문헌, 가짜 주석 등을 실재하는 것처럼 촘촘히 창작해 작품화한 것은 ‘메타픽션(metafiction)’이다. 애당초 보르헤스가 소설가이고 그의 작품이 처음부터 소설이듯, 메타픽션은 허구란 사실을 스스로 드러낸다.
하지만 현실에서 둘의 경계, 즉 허구를 사실로 치장하는 패러픽션과 허구라면서 실재를 모방하는 메타픽션은 거의 틈새 없이 겹칠 때가 많다. 성공적인 메타픽션이 되려면 패러픽션의 장치들이 필요하고, 성공한 패러픽션도 허구성이 들통나는 순간 메타픽션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둘은 현실 전복-창조에 공모하며, 독일 출신 작가 W.G 제발트의 소설들처럼, 장르 자체의 경계와 권위에 도전하며 장르 너머의 새로운 미학을 창조-확장하기도 한다.
노엘 고댕의 앙타르타주에는 나름의 원칙과 윤리가 있었다. 오직 비대한 자아만 공격할 뿐 물리적 위해는 가하지 않는다는 것, 반격을 당하더라도 철저히 비폭력으로 대응한다는 것. 한 매체는 그를 "장난-테러를 예술의 경지로 승화시킨 아티스트"라 평하기도 했다. AFP 연합뉴스
고댕과 그의 동조자들의 ‘장난’ 역시 마르셸 뒤샹 등 20세기 초 뉴욕의 다다이스트들이 비평잡지 등을 통해 즐겨 벌이던 저 ‘문학적 장난’을 통해 동시대 문화-영화 권력을 조롱-전복하고자 했다. 그러던 중 1969년, 결정적인 장난이 전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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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영화감독 로베르 브레송(Robert Bresson)의 신작에 실망한 동료 감독 ‘조르주 르 글루피에(Georges Le Gloupier)’가 브레송의 얼굴에 크림 파이를 집어 던졌다는 글을 잡지에 발표한 거였다. 물론 사실무근이었고, 글루피에 역시 고댕과 함께 저 잡지 장난에 동조하던 실존 영화감독 장피에르 부익수(Jean-Pierre Bouyxou)’가 창조해낸 가상 인물이었다. 고댕은 후속 글에서 브레송의 절친인 프랑스 작가 마르그리트 뒤라스(Marguerite Duras)가 친구의 복수를 위해 한 식당에서 글루피에에게 파이를 집어 던졌다는 글도 발표했다. 파이를 맞은 글루피에가 얼굴에 묻은 크림을 핥으며 뒤라스에게 했다는 말- “당신의 파이 맛이 당신 소설보단 낫군요.”-도 덧붙였다. 그 역시 뒤라스를 함께 조롱하기 위한 고댕의 패러픽션이었다.
공교롭게도 얼마 뒤 뒤라스가 자신의 신작 홍보를 위해, 실제로 벨기에를 방문했다. 그 절호의 기회에 고댕은 휘핑크림을 얹은 케이크를 들고 행사장을 찾아가 뒤라스의 얼굴에 집어 던짐으로써 ‘글루피에의 복수’를 완성한다. 케이크에는 ‘경의를 담아, 글루피에’라 적힌 명함이 꽂혀 있었다. 그는 기자들에게 “뒤라스의 지성과 영민함은 오직 그녀의 허영심을 채우기 위해 존재할 뿐”이라며 그의 “'텅 빈 소설(empty novel)’을 비판했다. “권위와 명성에 도취된 거만한 유명인사들”을 타깃 삼아 고댕이 평생 이어간 ‘케이크 던지기’ 테러, 즉 앙타르타주(L’ Entartage)’가 그렇게, 패러픽션의 경계를 넘어 현실이 됐다.
“우리의 공격 대상은 오직 ‘젠체하는 바보들(les pompeux cornichons)’의 비대한 자의식”이라며 권력과 권위, 사회의 엄숙주의를 유머로 해체하고자 했던 개인적 무정부주의자 겸 자칭 ‘앙타르퇴르(L'Entarteur, 타르트-케이크 던지는 사람)’ 노엘 고댕이 별세했다. 향년 80세.
고댕에겐 타깃을 선정하는 나름의 원칙과 윤리 기준이 있었다. “유명인이라도 비위에 거슬리지 않거나 사회적으로 무해한 이들, 또 약자의 편에 선 사람들은 결코 공격하지 않는다”는 것. 또 오직 자아만 공격할 뿐 절대로 다치게 하지 않고 반격을 받더라도 저항하지 않고 평화주의를 고수한다는 것. “우리는 지역 영세 제빵업자가 갓 만든 (휘핑크림을 얹은) 최상의 스폰지 케이크만 사용한다. 품질이 중요하다. 케이크에 문제가 있으면 먹어치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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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테러’ 영상과 사진을 언론사에 팔아 활동 경비를 주로 충당했다.
그렇게 선정된 그의 타깃은 저명 안무가 모리스 베자르(1969), 영화감독 장뤽 고다르(1985), 전 프랑스 대통령 니콜라스 사르코지(1997)와 거물 정치인 장피에르 슈벤망(2002), 사업가 빌 게이츠(1998), 자신의 저가 항공사 고객들에 대한 모욕도 서슴지 않던 라이언에어 CEO 마이클 오리어리(2003) 등 30여 명에 달했다. 임신중단-피임에 반대해온 가톨릭 교회 역시 그의 공격 대상이었다.
피해자들의 반응은 물론 다양했다. 고다르처럼 케이크를 맞은 뒤 “이건 무성영화에 대한 오마주”라며 재치 있게 수용하거나, 빌 게이츠처럼 “케이크 맛도 별로”라며 불쾌감을 우회적으로 드러낸 이가 다수였지만, 슈벤망처럼 고댕을 고소해 벌금형을 받게 한 이도 있었다. 고댕의 지인과 동조자들은 기자들까지 동참한 떠들썩한 벌금 모금 파티로 응수했다.
1998년 벨기에 브뤼셀을 방문했다가 노엘 고댕 일당의 케이크 공격을 받은 빌 게이츠. 노엘과 동조자들은 독.적 지위로 벌어들인 그의 막대한 부와 천재적 재능을 체제 유지에만 사용한 데 대한 응징이라고 밝혔다. 게티이미지
그의 앙타르타주가 세상에 알려지면서 ‘국제제빵사여단(International Patisserie Brigade)’이란 불특정 다수의 추종 집단이 만들어져 각지에서 ‘게릴라’ 활동을 벌이기도 했고, 고댕을 주인공으로 한 TV 다큐멘터리 시리즈가 제작-방영되기도 했다. 그는 신문-방송 인터뷰 등에 적극적으로 출연해 “저항적 전복 운동에는 수천 가지 형태가 있고 모두 흥미롭지만(…) 내 생각에 앙타르타주만큼 편리하고 즉흥적인 건 없다”고 너스레를 떨곤 했다. 다다이스트와 초현실주의 예술가 및 지식인들이 유명인의 허세를 까발리기 위해 쓰곤 했던 모욕적인 편지도 지지한다면서도 “하지만 내가 빌 게이츠에게 편지를 보내더라도 그건 오직 그만 볼 것이다. 내가 선택한 앙타르타주는 일종의 시각적 에스페란토어(만국 공통어)다”라고도 말했다.
그의 알리고어이자 가상의 페르소나였던 ‘조르주 르 글루피에’의 활동 철학에는 다다이즘과 68세대의 가치관에 앞서 20세기 초 유럽을 풍미한 아나키즘 특히 표트르 크로포트킨 등 아나키스트들의 주요 망명지이자 요람이었던 벨기에의 역사와 전통에서 유래한 급진적 무정부주의 이념이 바탕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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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개인주의적 아나키스트라 평하는 까닭도 그가 권위 자체를 해체-전복하려 했기 때문이었다.
고댕이 가장 집요하게 공격한 대상은 프랑스 철학자 겸 작가 베르나르-앙리 레비였다. 배꼽까지 단추를 풀어 헤친 하얀 실크 셔츠를 트레이드마크처럼 차려 입고 TV 등에 수시로 등장해 관용과 합리주의를 웅변하며 머뭇거림도 없이 “나는 내 세대의 가장 재능 있는 작가”라 자찬하곤 하던 레비는 고댕의 적절한 ‘먹잇감’이기도 했다. 그에게 레비는 “자신을 광적일 정도로 진지하게 여겨(…) 오늘의 사르트르라도 되려고 하는” 바보들 중 한 명이었다.
1985년 한 방송사 앞에서 고댕의 첫 공격을 받은 레비는 평소의 언행과 달리 금세 이성을 잃었다. 생크림으로 범벅이 된 얼굴로 격하게 분노하며 고댕의 목을 조르고, 쓰러진 고댕에게 “당장 일어나, 안 그러면 머리통을 차버리겠어”라고 외쳐댄 것. 그 장면이 고스란히 영상에 담겨 세상에 퍼져나갔다. 이후 레비는 1994년과 2015년 등 최소 8차례 고댕의 케이크 세례를 겪어야 했고, 프랑스 시사풍자 인형극에까지 등장해 조롱당하곤 했다. 레비 인형이 말을 하려 할 때마다 케이크로 입이 틀어막히는 식이었다. 고댕은 “파이를 맞은 직후 약 5초 사이에 그의 진짜 인격이 드러나는 법”이라며 “만일 레비가 다음 공격을 당한 뒤 (화내지 않고) 우스꽝스러운 노래를 부른다면 더 이상 공격하지 않겠다”고 공개 선언하기도 했다.
그는 도스토옙스키의 소설 ‘죄와 벌(Crime et Chatiment)'에서 불어 알파벳 하나만 바꿔 ‘크림과 처벌(Creme et Chatiment, 1995)’이란 제목의 자서전을 썼다. 그 책을 편집한 프랑스 알뱅 미셸 출판사 편집장 에르베 데싱제(Herve Desinge)는 “솔직히 베르나르-앙리 레비는 스스로 바보가 되는 방법을 알고 있었던 셈”이라고 논평했다.
철학자 겸 작가 베르나르-앙리 레비는 1985년 노엘 고댕의 첫 공격에 격하게 반응하는 바람에 2000년대까지 최소 8차례나 연속 공격을 당했고, 시사 코미디 프로 등을 통해서도 여러 차례 풍자-조롱당하는 수모를 감당해야 했다. 2015년 케이크 세례를 받은 직후의 레비. AFP 연합뉴스
앙타르타주에 대한 비판-비난도 적지 않았다. 논쟁으로 문제의식을 표현할 줄 모르는 “지적 능력이 결여된 바보들의 유치한 폭력”이라는 비판, 대중적 이목을 끌기 위한 ‘관종형 테러’라는 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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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댕 스스로가 미디어의 주목을 받으며 대중적으로 유명해졌고, 그 영향력으로 부조리한 권력이 됐다는 지적. 권위 일반에 대한 부정이야말로 대중주의-반지성주의의 방증이라는 비판도 가능할 것이다. 사실 그건, 모든 성공한 혁명이 내포한 타락의 가능성처럼, 성공한 문화적 저항(Culture Jamming)의 숙명일 수 있다.
고댕은 오히려 자신(의 활동)이 유명해진 덕에 전 세계의 수많은 동조자들이 영감과 아이디어를 주고 타깃이 될 만한 이들의 비밀스러운 일정과 동선, 경호 정보 등을 제공해주고 있다고 말했다. 그를 일약 세계적 앙타르퇴르로 주목받게 하는 데 일조한 빌 게이츠 케이크 테러도 그들 덕에 성공할 수 있었다고 한다. 카메라 가방과 외투 등에 작은 타르트를 숨긴 32명의 동조자가 오후 내내 맥주를 마시며 게이츠가 나타날 때까지 잠복한 끝에 성사시킨 98년 2월의 그 브뤼셀 작전 직후 고댕은 게이츠가 “유머가 결여된 자의식 과잉의 전형”이자 “자신의 지능과 상상력을 제대로 사용하지 않고 자본주의 현상 유지를 위해 쓰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칸 영화제에 참석한 배우 카트린 드뇌브와 샤론 스톤을 공격해주면 거액을 주겠다는 제안을 거절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들에게 아무런 반감이 없기도 했지만 대가를 받는 것 자체가 옳지 않다고 여겨서였다. 고댕은 “우리는 파이를 든 (허영의) 약탈자가 되고 싶은 것이지, 용병이 될 수는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평소의 고댕은 아내인 배우 실비 반 히엘(Slivie Van Hiel)과 수도 브뤼셀 북부의 검소한 집에서 말년까지 고양이들과 함께 비교적 조용히 살았다. 90년대 말 그를 인터뷰한 월스트리트저널 기자에 따르면 그의 집에는 대부분 슬립스틱 영화인 1만여 개의 비디오 컬렉션이 있었다고 한다. 그는 자서전 외에 영화이론과 비평, 급진주의 역사 등을 다룬 몇 권의 책을 썼고, 몇 편의 다다풍 단편 영화를 제작했고, 절친인 부코이 감독의 영화 등에 카메오로도 출연했다.
고댕은 자신의 삶을 “평생 이어진 미니어처 블록버스터 시리즈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단 주인공들은 자신들이 그 속에서 연기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그런 영화.” 지위와 명성에 취해 스스로를 세상의 중심인 양 착각하며 우쭐대는 이들의 삶이 실은 권력구조의 뻔하고 지루한 각본에 따라 움직이는, 그러다 언제 어디서 날아들지 모르는 생크림 케이크 한 방에 웃음거리로 전락하고마는 슬랩스틱 단편영화의 주인공들일 뿐이라는 이야기. 그가 시나리오를 쓰고 감독하고 주연한 그 평생의 영화가 마침내 끝이 났고, 이제 그가 비평가들 앞에 서야 할 때가 됐다.
에 도전하며 장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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