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결혼 소식은 대개 휴대전화로 옵니다. 카카오톡으로 도착한 모바일 청첩장을 열면 두 사람의 사진이 흐르고, 지도 앱과 연결된 약도에, 축의금 보낼 계좌번호까지 담겨 있습니다. 손가락 몇 번이면 소식을 전하고, 또 받습니다. 그렇다면 100년 전 사람들은 결혼을 어떻게 세상에 알렸을까요.
신랑신부(新郞新婦) / 동아일보 1926.8.15
1926년 8월 15일자 동아일보에 실린 지면입니다. ‘신랑신부(新郞新婦)’라는 고정란에, 남녀 한 쌍의 사진이 나란히 놓였습니다. 곁에는 두 사람의 내력이 짧게 적혀 있습니다. 어느 지방에 본적을 두고, 어느 학교를 다녔으며, 언제 어디서 결혼식을 올린다는 내용입니다.
1920년대 지면을 넘겨 보면 이런 ‘신랑신부’란이 꾸준히 눈에 띕니다. 그런데 신문에 등장한 이들에게는 공통。이 있습니다. 하나같이 배움이 남달랐던 사람들입니다. 동경으로 유학을 다녀온 청년, 이화학당을 나온 여교원,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한 의사, 경성의 여자고등보통학교를 수석으로 마친 신부…. 신문이 사진과 함께 알려주던 결혼은, 이렇게 이름이 알려졌거나 배움이 앞섰던 이들의 몫이었습니다.
지면에 오를 일 없는 보통 사람들은 어떻게 했을까 생각해 봅니다. 입에서 입으로 혹은 전보와 전화로,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소식을 건넸을 것입니다.
● 신문 한 귀퉁이의 ‘화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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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관행은 광복 이후로도 이어집니다. 1960년대 신문에는 ‘화촉(華燭)’ 혹은 ‘결혼’이라는 이름의 단신란이 있었습니다. 부음·인사와 나란히 놓여, 누구의 자녀나 형제가 언제 어디서 백년가약을 맺는지를 몇 줄로 압축해 전했습니다. 양가의 관계와 날짜 예식장 주례까지 한 줄에 담겼습니다.
1960년대 지면을 보면 천도교예식장이나 도심의 호텔이 예식 장소로 자주 등장합니다. 그중에는 멀리 미국에서 올린 결혼을 서울의 지면에 알린 경우도 있습니다. 유학과 이민의 시대가 열리던 풍경이 이 짧은 단신에 슬며시 비칩니다.
다만 이런 단신도 시간이 지나며 차츰 뜸해졌습니다. 인터넷과 휴대전화가 퍼지면서 신문을 통해 결혼을 알릴 일이 줄어든 것입니다. 지금은 연예인이나 유명인의 자녀, 혹은 화제가 될 만한 이색 결혼만이 기사로 실립니다. 신문이 알려주는 결혼은 예나 지금이나 몇몇 사람의 몫인 셈입니다.
● 종이 청첩장의 시대
보통 사람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결혼을 알리게 된 것은 종이 청첩장이 널리 퍼지면서입니다. 우편으로 부치고 손으로 건네던 그 한 장에는 시대의 표정이 담겨 있습니다.
1998년의 청첩장
여기 한 장의 청첩장이 있습니다. 1998년 봄에 만들어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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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전체가 외환위기의 한파를 지나던 때였습니다. 청첩장 인사말에도 그 시절의 그림자가 스칩니다. 어려운 때에 걸음 하시게 해 송구하다는 문구가 그렇습니다. 손으로 그린 신랑신부 삽화, 조각보 무늬로 꾸민 사진 액자, “I Love You”라고 적은 손글씨. 컴퓨터로 편집하고 인쇄하며, 저마다 개성을 담아보려던 청첩장의 시대였습니다. 지도 앱이 없던 때라 예식장까지 가는 약도와 지하철 버스 노선을 손수 그려 넣은 것도 눈에 띕니다.
● 손안으로 들어온 청첩장
2000년대 들어 결혼 소식은 이메일과 문자로 옮겨갔고, 지금은 카카오톡과 SNS가 그 자리를 대신합니다. 종이도 우표도 손으로 그린 약도도 필요 없어졌습니다. 이제 누구나 자기 결혼을 스스로 알릴 수 있게 되었고, 그 소식은 예전보다 빠르고 넓게 퍼집니다.
돌아보면 결혼을 알리는 방식은 100년 사이 크게 달라졌습니다. 신문 한 귀퉁이의 사진에서 손으로 만든 종이 청첩장을 지나, 손안의 화면 속으로. 다만 변하지 않은 것도 있습니다. 좋은 날을 맞아 그 소식을 가까운 이들과 나누고 싶은 마음 그리고 축하받고 싶은 마음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방식으로 결혼을 알리셨나요. 혹은 어떤 청첩장을 아직 간직하고 계신가요. 서랍 어딘가에 넣어둔 오래된 청첩장 한 장이 있다면, 오늘 한번 꺼내 보셔도 좋겠습니다. 그리고 이 가을 누군가의 결혼 소식을 들으셨다면 한껏 축하해주시는건 어떨까요. 힘들어도 함께가 낫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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