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의 역사' 인텔의 도전<12>
누구나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게 된 컴퓨터 혁명은 인텔이 개발한 마이크로프로세서에서 시작됐다. 그 전까지 컴퓨터를 개인이 갖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IBM과 인텔 덕분에 누구나 개인용 컴퓨터(PC)를 사용하는 1인 1PC 시대가 열리면서 진정한 디지털 혁명으로 나아갔다.
인텔의 4004 마이크로프로세서. 인텔 박물관 홈페이지
아무도 믿지 않은 손 안의 컴퓨터
"이 손 안에 컴퓨터가 있습니다."
1971년 컴퓨터 전시회에서 발표에 나선 인텔의 개발자 테드 호프가 반도체를 들어 보이자 일부 청중들은 그가 미쳤다고 생각했다. IBM이 만든 '메인프레임'으로 대표되던 당시 컴퓨터는 방 하나 크기였다. 거대한 컴퓨터가 내뿜는 열을 식히려면 별도의 냉각장치가 필요했고 자료를 담는 저장장치 무게만 1톤이었다. IBM은 메인프레임이 워낙 커서 전용 비행기로 고객사에 배송했다.
그런데 조그만 반도체가 메인프레임 역할을 한다니 청중들이 믿지 못할 만 했다. 테드 호프가 들어 보인 반도체는 인텔이 내놓은 최초의 상용 마이크로프로세서 '4004'였다. 마이크로프로세서는 전기 신호를 전달하는 단순 스위치 역할의 트랜지스터나 자료를 저장하는 메모리 반도체와 달리 계산이 가능한, 사람의 두뇌처럼 연산을 할 수 있는 반도체다.
4004 프로세서는 일본 비지컴이 전자계산기용으로 인텔에 개발을 의뢰한 반도체였다. 그러나 비지컴은 전자계산기 업체의 난립으로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경영난을 겪자 반도체 공급업체인 인텔에 4004 마이크로프로세서 가격을 깎아 달라고 요구했다. 대신 인텔은 전자계산기 외 다른 분야에 4004 반도체를 팔 수 있는 권리를 확보했다
온라인 바다이야기
. 이를 통해 인텔은 날로 경쟁이 치열해지는 반도체 시장에서 새로운 돌파구로 마이크로프로세서 시장을 만들고자 했다.
4004 프로세서는 저장과 계산 기능, 결과물 출력 및 전력 통제 등 다양한 역할을 하는 4개의 반도체를 하나로 묶은 반도체다. 덕분에 메인프레임처럼 여러 부품이 필요하지 않아 컴퓨터 크기를 줄일 수 있었다. 그래도 당시 기술로 크기를 줄이는 것은 한계가 있어 소형 컴퓨터 크기가 냉장고만 했다. 하지만 방 하나를 가득 메운 메인프레임에 비하면 아주 작았다. 여기에 별도의 냉각장치도 필요 없어 설치나 이동이 메인프레임보다 간편했다.
그만큼 획기적이어서 오히려 사람들은 인텔의 4004 프로세서를 반신반의했다. 심지어 인텔 내부에서도 4004 프로세서가 메인프레임을 대체할 것이라고 믿지 않았다.
인텔의 8080 마이크로프로세서. 인텔 박물관 홈페이지
역사적 이정표가 된 8086 프로세서 개발
4004 프로세서를 개발한 인텔의 일등 공신은 이탈리아 출신의 과학자 페데리코 파진과 테드 호프다. 특히 파진은 오늘날 반도체 설계의 표준이 된 부트스트랩 탑재 기술을 발명했다. 이 기술은 반도체 내 회로 전압을 일정하게 유지하면서 동작 속도를 끌어 올리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4004 프로세서는 시장에서 별다른 호응을 얻지 못했다. 제품의 문제가 아니라 시장에서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지 않았다. 4004 프로세서를 제대로 다루려면 각종 소프트웨어가 필요한데, 신제품인 4004 프로세서를 제대로 이해하고 소프트웨어를 만들 개발자가 없었다.
릴게임야마토
그런데도 인텔의 개발자 파진은 굴하지 않고 1974년 한 단계 나아간 새로운 8비트 마이크로프로세서 '8080'을 개발했다. 4비트 프로세서인 4004보다 두 배 더 많은 자료를 한 번에 처리할 수 있는 8080은 획기적인 프로세서였다. 4개의 반도체 묶음인 4004와 달리 8080은 하나의 반도체로 모든 기능을 수행하는 진정한 마이크로프로세서였다. 그러면서 속도가 대폭 향상돼 초당 100만 번의 연산을 할 수 있어 더 많은 명령어 처리가 가능했다.
덕분에 8080 프로세서는 인기를 끌며 인텔이 원한대로 마이크로프로세서라는 새로운 시장을 열었다. 8080 프로세서는 1975년 미국 전자업체 MITS가 만든 컴퓨터 '알테어 8800'의 중앙처리장치(CPU)로 쓰였다. 알테어 8800과 인텔의 8080 덕분에 마이크로소프트(MS)가 탄생했다. 빌 게이츠와 폴 앨런은 알테어 8800에 필요한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며 MS를 공동창업했다. 또 전자오락실용 게임기와 전자계산기 등에도 8080 프로세서가 사용됐다.
8080 프로세서의 성공을 발판으로 인텔은 1978년 CPU 역사상 중요한 16비트 마이크로프로세서 '8086'을 내놓았다. 8086 프로세서는 훗날 개인용 컴퓨터 시장을 지배하는 x86 프로세서 구조의 모태가 됐다는 。에서 역사적으로 큰 이정표를 세웠다. 8086 프로세서를 토대로 훗날 286, 386, 486과 펜티엄 등 진화한 CPU가 개발됐다. 덕분에 PC는 x86, 모바일은 ARM이라는 업계의 공식 같은 CPU 표준이 성립됐다.
하지만 8086 프로세서는 앞선 기술이 독배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웠다. 8086 프로세서는 8080 프로세서보다 두 배 빨랐지만 시장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다.
모바일 바다이야기상어
컴퓨터업체들은 8비트 프로세서인 8080으로도 충분한데 굳이 돈을 들여 8086 프로세서로 바꿀 이유가 없었다. 8086 프로세서로 교체하면 주기판과 주변장치도 여기 맞춰 바꿔야 하기 때문에 부담이 됐다.
무엇보다 16비트 프로세서에 맞춰 소프트웨어를 다시 만들어야 했던 소프트웨어 업체들이 싫어했다. 8086 프로세서는 이전 제품인 8080 프로세서에 비해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이 다루기에 무거웠다.
이 틈을 파고든 것이 경쟁업체인 자이로그와 모토로라다. 자이로그가 1979년 내놓은 16비트 프로세서 'Z8000'은 인텔의 8086 프로세서보다 속도가 빠르고 성능이 좋았다. 결정적으로 자이로그는 인텔에서 마이크로프로세서를 개발한 페데리코 파진이 대우에 불만을 품고 퇴사해 이직한 업체여서 인텔에게는 더 뼈아팠다. 모토로라도 같은 해 8086 프로세서보다 성능이 뛰어난 16비트 프로세서 '68000'을 선보였다.
특히 자이로그와 모토로라의 16비트 프로세서는 인텔의 8086 프로세서보다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기 편해서 소프트웨어 업체들이 더 선호했다. 자이로그의 Z8000은 기업용 유닉스 컴퓨터, 전자오락기, 산업기기 등에 주로 쓰였고, 모토로라의 68000은 훗날 유명해진 애플의 개인용 컴퓨터 '매킨토시'에 탑재됐다.
인텔의 8088 마이크로프로세서를 사용한 IBM PC. 인텔 박물관 홈페이지
결국 인텔은 마이크로프로세서 시장을 개척했지만 16비트 프로세서가 나오면서 수세에 몰렸다. 위기를 뚫을 특단의 대책이 필요했던 인텔은 IBM을 찾아갔다.
※ 이 기사는 한국일보의 프리미엄 기사입니다. 더 자세한 기사 내용은 한국일보닷컴에서 로그인 후 무료로 보실 수 있습니다. 링크를 복사해 주소창에 붙여 넣으세요.
https://www.hankookilbo.com/news/article/A0000631
개발하며 MS를 공